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과거사 청산 문제 (문단 편집) == [[독일 제국]] 시절 [[제국주의]]에 대한 태도 == 현대 독일은 독일 제국에 대해서도 견해를 어느 정도 밝혔다. 다만 특이한 점은 독일 제국에 관해서는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우선 [[빌헬름 1세]]와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다스리던 시절의 독일 제국 전반기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좋다. 빌헬름 1세는 독일 내에서도 [[프리드리히 대왕]] 등과 더불어 칭송받는 군주 중 한 명이며, 비스마르크는 독일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 중 하나이다. 이는 이들이 수 세기 이상 조각난 나라를 통일하고 철천지 원수였던 프랑스를 꺾어 [[베르사유 궁전]]에서 통일 제국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빌헬름 2세]]가 다스리던 제국 후반기 및 [[제1차 세계 대전]]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 빌헬름 2세는 대부분 [[암군]]이라고 평가를 하는 군주이며, 특히 빌헬름 2세의 [[세계 정책]], 온갖 외교적 불화,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에 가장 커다란 불씨를 제공한 점은 많은 독일인들이 그를 히틀러 다음으로 혐오하게 만들었다. 한편 독일 정부는 제국주의 역시 타국의 자유와 주권을 박탈하고 영토 확장 논리에 입각한 위험한 사상이라는 공식적인 입장을 유지한다. 따라서 이 입장을 바탕으로 교육과정에서도 독일 통일과 별개로 독일의 제국주의는 엄히 비난대상으로 명시한다. 결론적으로 독일의 [[제국주의]] 청산까지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의 경우, [[제국주의]] 문제에 있어서도 역사 수정주의적 태도를 보이려 하지 않고 인식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일례로 일본 정부가 과거 제국주의적 행태를 미화하는 것과 달리 독일 정부는 후술되어 있듯 빌헬름 카이저 과학연구소라는 명칭이 제국주의를 옹호한다고 금지하는 등 제국주의 자체를 미화하지는 않으며, 나비미아 학살에 대해서도 정부가 역사 수정주의적 태도를 보인다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같은 서구 열강인 영국, 프랑스 등이 여전히 제국주의의 성격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는 것과 달리 독일은 제국주의조차도 ‘상대악’ 정도로 규정하여 일단 그 부정적인 성격을 인지한다.] 반면에 독일의 과거사 청산의 진정성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으로 보는 측에서는 독일의 반성과 사죄는 과거사 청산을 안할 수 없거나 [[독일 재통일]]을 위하여 일부러 자세를 낮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국가 및 민족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행해진다는 점과 여전히 2차 대전 피해국들과 달리 구 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배상을 완강히 거부하는 태도를 들어 비판한다.[* 일본의 경우 비록 ‘독립축하금’이라는 명칭으로 인해 논란은 있으며 그 독립축하금의 절반 이상이 ‘유상 차관’이었다는 한계도 명백하나 어쨌거나 상당한 액수의 배상금을 한국에 지원한 바 있다. 반면 독일은 나미비아 등 구 독일의 식민지에 대해 어느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 행하는 경제 지원 이상의 배상을 지급한 바도 없다. 따라서 ‘구 식민지 출신 국가에 대한 금전적인 배상’이란 측면만 놓고 보면 독일이 일본보다도 못한 것은 맞다. 다만 일본으로서도 어쩔 수 없이 협력이 필수불가결한 이웃 국가 한국과 달리 독일은 나미비아와 멀리 떨어져 있어 관계 복원에 전혀 절실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일본의 배상이 자발적인 성격이라기보단 미국의 압박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한편 후술하듯 이는 독일 뿐 아니라 유럽의 구 열강들이 처한 공통의 문제이며 독일은 유럽 내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축이다. 일례로 프랑스의 경우 아이티를 독립시킨 이후에도 아이티에 인프라 건설을 빌미로 2차 대전 이후까지 한 세기 이상 배상금을 뜯어냈다. 다만 독일은 1차 대전 패전에 따라 식민지를 잃게 되어 이러한 조치를 취할 여지조차 없었다는 점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상당수 연구에 따르면 현재 독일인들은 과거 독일이 제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오늘날 토고, 나미비아, 부룬디, 탄자니아 지역에서 살인을 저질렀던 데 대한 기억이 거의 없으며[*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7388110|나미비아 대학살: 독일이 여전히 비판 받는 이유]]] 자신들이 제1차 세계 대전 유발국이라는 것에 대해선 베르됭 묘지에서 매년 인정하고 사과함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부는 [[독일 제국군]]에 대해서는 나치 독일의 [[독일 국방군]]이나 [[슈츠슈타펠]]만큼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후술하듯 사실 국방군에 대한 재인식 역시 1980년대 무렵에 들어서야 등장했다. 그 이전까지는 독일 국방군은 나치 정권과 별개의 집단이며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했을 뿐 나치의 전쟁범죄에 적극 협조하지 않았다는 것이 대다수 독일인들의 시각이었으며 서방국들 역시 냉전이라는 상황 속에서 서독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국방군 문제를 걸고 넘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를 시작으로 나치즘 협조자로서의 국방군의 성격이 사회 전반적으로 부각되었고 21세기 현재에는 독일인들도 국방군의 이러한 면모를 인지한다. 다만 독일 정부는 국방군과 현대 독일군의 계승성 역시 부정하진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